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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없고, 살기는 불편, 비전도 안 보여"… 청년층, 앞다퉈 ‘지방 엑소더스’ [심층기획 - 지방소멸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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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02 06:00:00 수정 : 2021-11-02 08: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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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수도권 인구집중 가속화
2600만명 주민등록… 총인구의 과반
‘상경’ 택한 순이동 인구 93%가 20대
영·호남서 20년간 135만명 빠져나가

생존 위협받는 非수도권
사람·기업 없어 지방재정 ‘악화일로’
교육 여건·생활 인프라 ‘압도적 열세’
“고용·주거 등 종합적 정책 추진 필요”

 

‘25만563명.’

 

국회입법조사처(입조처)가 ‘지방소멸 위기지역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최근 20년간(2001∼2020년) 부산에서 서울·인천·경기로 순이동(전입자-전출자)한 인구를 집계한 수치다. 부산에 이어 경북(20만1836명), 대구(19만4269명), 전북(17만8422명), 경남(16만578명) 등 영·호남지역 8개 시·도에서 지난 20년간 수도권지역으로 유출된 인구는 대전 인구(145만4679명)와 맞먹는 134만6167명에 달한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수도권 주민등록 인구는 2600만6335명으로 전국(5166만7688명)의 50.33%에 달한다. 20년 전인 2001년 46.59% 대 53.41%였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비중은 2020년 50.24% 대 49.76%로 역전된 뒤 점차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지역경제의 주춧돌인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한 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순이동한 인구는 8만7775명인데 92.8%인 8만1442명이 20대다. 30대와 10대의 순이동 역시 각각 1만1988명, 9247명이었다. 중·고교와 대학 진학 및 구직 활동에 따른 것이며 30대 이하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2010년(10∼30대 순이동 5만4241명)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게 입조처 설명이다.

◆일자리와 대학, 생활 인프라 집중된 수도권

“고향에서 계속 살고 싶었는데 인근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집세에다 식비, 생활비 등 경제적 부담은 크지만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에서 일찍 터전을 잡는 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상경했어요.”

지난 8월 안동대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상경했다는 구모(24·여)씨 경우처럼 청년들이 수도권을 향하는 이유는 일자리 문제가 제일 크다. 최악의 취업난이라지만 그래도 수도권이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뚫기에는 좀더 수월하다.

부산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0대 기업 중 743개사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매출액으로 비교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차이는 더 벌어진다. 86.9% 대 13.1%다. 구씨의 생활권인 대구·경북의 경우 1000대 기업 중 44개사만 위치해 있고, 매출액 비중은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주민등록 인구가 7160명 줄어 올해 3분기 기준 10만5813명에 불과한 부산 서구 관계자는 “부산 전 지역을 통틀어도 르노삼성차 외에 대기업이 없어 젊은 청년들의 ‘탈부산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원도심 지역이 다 그렇듯이 인구를 유입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기업 분포의 차이는 청년(15∼29세)고용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전국 평균 청년고용률은 44.3%이다. 수도권(서울 51.3%, 인천 47.4%, 경기 45.1%)은 평균을 상회하지만 울산 34.0%, 전북 35.2%, 광주 36.4%, 전남 36.9%, 경북 37.7% 등 대부분 비수도권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수도권은 교육 여건이나 생활 인프라도 수도권과 경쟁 자체가 안 된다. 시·도별 병원 접근성은 서울 1.97㎞, 경기 9.30㎞인 반면 광주 4.86㎞, 전북 13.06㎞, 부산 4.38㎞, 경북 15.83㎞ 등에 불과했다. 공연문화시설 접근성도 서울(2.08㎞)과 경기(6.96㎞)에 비해 광주(5.91㎞)와 부산(4.86㎞), 전북(10.12㎞)과 경북(11.98㎞) 등은 열악한 편이다.

◆인구 유출로 자립성장·기본권 위협받는 비수도권

사람과 기업이 없다 보니 비수도권의 지방재정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입조처가 최근 20년간 지역내총생산(GRDP·일정 기간 일정 지역 내에서 새롭게 창출된 최종생산물가치의 합)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 2000년 각각 48.0%, 52.0%였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GRDP 비중은 2019년 52.0%와 48.0%로 역전됐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총소득(GRNI·경제구역 내에서 주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거주자가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 비중은 2000년 3.4%포인트(수도권 51.7%, 비수도권 48.3%)에서 2019년 11.2%포인트(수도권 55.6%, 비수도권 44.4%)로 더 벌어졌다.

일자리는 없고, 살기는 불편하며, 비전도 안 보이니 가장 취업에 절실한 비수도권 청년층이 앞다퉈 수도권으로 향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지방소멸’은 더 가속화하고 있다. 입조처가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인구와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에 따라 올해 8월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229개 시·군·구와 3553개 읍·면·동 중 소멸위험지역(지수가 0.5 미만인 지역)을 산출한 결과 시·군·구는 108곳(47.2%)이었고, 읍·면·동은 1791곳(50.4%)이었다. 2017년 5월 기준 소멸위험 시·군·구는 85곳, 읍·면·동은 1483곳이었는데 5년 새 각각 27.1%, 20.8% 증가한 것이다.

지방소멸은 지역 생산과 소비를 통한 자립적 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거주민의 소득·주거·건강 등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정·고시한 89개 인구감소지역(시·군·구)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최근 20년 새 인구가 5만명 이상 감소한 전북 익산시 관계자는 “실질적 편의·소득 감소와 함께 상대적 박탈감 등이 심한 편”이라며 “특히 1인가구의 증가와 이웃 간 소통 단절로 마을 공동체도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입조처는 점차 악화하는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촉진을 위한 세제 혜택, 규제특례 적용, 펀드조성 △비수도권 지역 내 청년친화특구 조성 △광역·기초자치단체 수준의 광역연합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을 제시했다.

입조처는 보고서에서 “최근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나 일회성의 공모방식을 통한 지원이 많아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전 부처가 협업해 청년의 선호와 요구를 고려해 일자리, 주거공간, 문화시설 등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日, 지역활성화 法 만들고 전담기구 설치·운영

 

“지방이 쇠퇴하는 것을 방치하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일본 제2기 마을·사람·일자리 창생전략) 일본이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를 심각하게 느낀 것은 2014년이다. 그해 5월 마스다 히로야 당시 총무상은 2040년에 시정촌(기초자치단체) 1727곳 가운데 절반인 896곳이 줄어든 인구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마스다 리포트’다.

 

1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아베정부는 지방창생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지역활성화에 나섰다. 관련 법 제정과 중앙부처 전담기구 설치·운영으로 빠르게 대처했다. 제1기(2015~2019년)를 통해 청년 취업률, 방일 외국인 방문객 수 등 일자리 부분에서 긍정적인 결실을 거뒀다. 현재 진행형의 2기(2020~2024년)는 ‘미래에도 활력 있는 지역사회 실현’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지방에 일자리·사람·돈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정착시켜 인구감소에 적응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흐름은 일본과 비슷하다. 초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자 비율 20%)에 도달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차미숙 국토연 선임연구위원은 “서둘러 지방소멸 위기의 영향 진단과 전반적인 문제 해결에 사회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며 “현장인 지방이 주도해서 개성과 매력을 살릴 수 있도록 분권형 계획 수립 및 지원방식 설계·운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도 2011년부터 전역에서 40% 넘게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농촌은 실업률 증가와 열악한 정주환경으로 상황이 열악하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 성과로는 프랑스의 농촌관광인 ‘지뜨 드 프랑스’ 운동이 꼽힌다. 은퇴한 농업인 중심으로 전통주택을 개량·보수해 숙박 위주의 임대사업에 나섰다. 민간에서 시작해 이제 전국망을 갖춘 서비스로 확대됐다.

앞서 미국은 지방소멸 위기지역으로 기업유치로 효과를 봤다. 이른바 ‘기회특구’로 민간이 자산 형태와 상관없이 투자 때 세제혜택을 제공토록 미연방정부가 지정하는 구역이다. 해당 투자금은 현지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개발, 소상공업체 지원 등에 활용되며 여기서 발생한 소득은 다시 기업에 돌려준다. 미국에는 8766곳이 기획특구로 지정돼 있다.

 

차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나 독일 등은 1990년대 중반 일시적 출산율 하락을 겪으면서 이민·가족정책 개혁으로 신속히 대응했다”며 “우리나라는 정책인구를 정주에서 체류 그리고 관계 개념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기업·공공기관의 지역유치 등 다양한 시책의 전략적 도입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민섭 기자, 안동=배소영, 부산=오성택, 익산=김동욱, 인천=강승훈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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